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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백과

손각씨(孫閣氏)-처녀귀신

by 레일라와 2019.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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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기가 가득 찼지만 시집을 못 가고 죽은 손말명

흔히들 처녀귀신이라고 하며 원혼여귀 또는 왕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집을 못가 한이 되어 죽은 처녀로 주로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처녀에게 붙어서

괴롭히고 해를 입히고 살아있을 대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귀신들 중에서 가장 원한이 깊은 여귀가 바로 손각씨이다.

여기서 왕신이라 불리는 이유는

시집도 못 가고 한을 품고 죽은 처녀가 떠나지 못하고 주변 식구들에게 머물면서

자신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라는데 이때 이 고혼(孤魂-외로울 고, 넋 혼)을 왕신(王神)이라

명명(命名-목숨 명, 이름 명) 하여 집안의 가택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물론 모든 처녀귀신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고 무당이나 법사가 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낼 때에

그 집안의 재앙이나 사고와 죽음의 원인이 죽은 처녀귀신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 처녀귀신을 왕신 즉 집안의 가택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있다.

왕신을 모시는 방법은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모시기가 까다로운 왕신은 아무나 그냥 모셔서는 안되며

잘 모셨을 경우에는 집안을 일으키고 복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잘못될 경우에는

큰 해를 입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남해에 있는 사량도(蛇梁島)에 있는 옥녀봉에는 옥녀 원령(怨靈)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혼기가 다 되었지만 홀아버지와 둘이서만 살고 있던 옥녀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홀로 살고 있는 아버지의 성적인 요구가 있었고 아버지가 그녀를 범하려 하자

아버지를 피해서 옥녀봉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

옥녀가 떨어져 죽은 옥녀봉은 아직도 옥녀의 핏자국으로 빨갛게 물들어있다고 하며

비가 오는 날이면 아직도 바위 위에서 핏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사량도에서는 지금까지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옥녀를 위해서

결혼식을 올릴 때(전통 혼례일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례(大澧-혼일을 할 때 절을 주고받는 절차)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처녀가 시집을 갈 때 신부의 가마가 옥녀봉 밑을 지나갈 때에는 가마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전해진다.

원한이 깊은 옥녀가 시집가는 처녀를 샘을 내어 화를 끼친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며

옥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것이리라 생각한다.

강화도 주문진의 용소(龍沼)에 있는 깊은 연못에 처녀가 빠져 죽었는데

그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서 사천 가둔리에 혼자 살다 죽은 총각과 영혼결혼식을 올렸는데

무당 7명이 시왕굿을 하고 처녀귀신 허수아비를 만들어서 종이로 족두리를 만들어 씌우고

총각귀신에게는 사모관대(紗帽冠帶-원래는 벼슬을 하는 사람들이 입는 복장이었지만 지금은 전통혼례 때 입는 옷)를 입히고 혼수를 마련하여 첫날밤을 치르게 하였다.

그런 다음 허수아비를 불태워 없앤다고 한다.

그 이후로 두 집안은 사돈지간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제사때가 되면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시집 못 간 처녀가 죽으면 남자 옷을 입혀 거꾸로 묻거나 가시가 있는 나무를 관 주위에 놓고

묻었으며 사거리에서 교차지점이 되는 곳에 몰래 묻어 남자가 밟고 지나가게 해서

처녀의 한을 풀기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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